어느 시대건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 사회는 엘리트 계층과 민중 계층의 공존적 관계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에 따라 문화 형태도 계층별로 나누어지고 예술 현상도 고급문화에
속하는 정통 예술과 민중에 의한 민중예술로 구분 지울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구분방식을 우리 겨레 그림에 적용해 보면 두 가지 줄기의 회화 형태를 볼 수 있는데, 문인화 및 도화원에 속한 전문 화가들이
 
  그린 정통 회화는 엘리트 계층의 예술이며, 그렇지 않은 계층에 의해 그려진 민화는 민중 예술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가들에 따라 민화에 대한 개념이나 명칭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각자의 염원, 신앙과 생활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마음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 정감이 어린 그림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옛날, 민화는 주로 병풍으로 그려져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의례 용품으로, 또 한옥의 가옥 구조를 보완하며 방안을 장식하는
도구로서 꼭 필요하였습니다. 종이에 그려 벽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신부가 타는 꽃가마에도 사용하였고, 도자기나 가구, 문방구,
돗자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 쓰여서, 옛 우리 어른들의 삶 주변에는 민화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떤 연구가는
민화가 옛날 우리 주택의 일부였다고까지 말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언제부터 민화를 그렸고, 또 수집하였는지 정확한 문헌은 없지만, 신석기 시대 바위에 그려진 짐승의 구도와 형상,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 산, 나무, 무늬 장식, 삼국 시대 무덤에서 나온 여러 문양에서 오늘날 우리가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과 매우 흡사한
민화적 형식과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고려, 조선 시대의 예술품은 물론이고 우리 역사의 전 시기를 통해서 민화적
그림이 끊임없이 제작되어 왔으므로, 적어도 5,000년 이상 민화적 소재가 담긴 그림이 그려져 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전통 회화의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천대받던 민화에 정식으로 민화라는 명칭을 쓴 이는 일본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1889-1961)
인데, 일본보다 훨씬 앞서 유럽과 미국에서 농민화, 민화라고 부르는 민속화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세련된 구도,
화가의 자질, 장인의 기교가 없더라도 독창성, 소재의 장인적 구사, 영감의 자취가 있다면 어느 그림 못지않게 가치가 있다는 판단 아래
많은 미술 사학자들이 민화를 정식 회화 속에 넣었고 록펠러 같은 민화 수집가도 많았습니다.
 
참다운 민화의 멋은 서툴고 어수룩하게 보이면서 전혀 꾸밈이 없이 자유롭게 그린 것에 있습니다. 순수한 민화풍 그림들은 바탕의
변화로 독보적인 창조를 모색한 현대 화가들처럼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썼습니다. 그림의 크기, 화폭의 모양이 제멋대로였고, 장지에도
그렸지만, 창호지에도 그리고, 중국에서 들여온 화선지, 서양지로 불리는 크래프트지, 모조지, 삼베, 모시, 비단, 광목, 나무판자등
무엇이든 이용해서 그리고, 그 바탕과의 어울림을 찾았습니다. 바탕에는 물을 들이기도 하고, 물감도 특수하게 처리된 광물성에서부터,
화공들이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식물성 물감, 서양화에 사용되는 유화용 물감까지, 심지어는 페인트로 그린 그림까지 있습니다.
붓으로 대부분 그렸지만 손가락으로 그리기도 하고, 가죽, 버드나무 가지, 불에 달군 인두 등을 사용해서 다양하게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