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4

학교 도서관 문화운동 네트워크 소식지  51호                   www.hakdo.net


글쓴이 김봉화는 변산 구름산 아래 오두막 무향거에 살며 대안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실과 바늘로 자연을 그리고 있다.


앤틱인가,  빈티지인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이 되었다고 여기저기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여성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나와서 뭔 얘기를 해달라 했다.

기분 괜찮은 일이었지만, 곧 고민에 빠졌다.

참가자 대부분이 이민자로서 생활이 안정되어 있고, 각자의 전문분야에서도 내로라하는 여성들 앞에서 내가 할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나는 작품구성이 잘 안 되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빈티지 가게들이 모여있는 빌리지로 놀러 가는데, 가끔 가는 앤틱 가게 주인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갈 때마다 자기 상점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이 진품(Original Antique)이라고 자랑이 끝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그 자랑하는 말을 중간에서 끊고,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앤틱 또는 빈티지라고 구분하는가?”

어떤 물건이 장인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50년이 넘으면 앤틱이라 하는데 단, 세월의 때는 묻었겠지만 잘 관리되어서 처음 탄생했을 때의 모양과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어딘가 긁히고 깨지고 떨어져 나가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빈티지라 하고 그 가치는 뚝 떨어진다.”

그래? 우리는 최소 100년은 넘어야 골동품이라 하는데...

나라의 역사가 짧은 콤플렉스에서 나온 50년이겠지만 의외였다.

유럽 이민자들이 가지고 건너온 물건중에는 정말 멋진 것들이 많다.

상인들이 수입해서 들여오기도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어느 가정에서 잘 닦아가며

정갈하게 사용하던 가구들과 생활용품들이 지나간 시간이 믿기지 않게 완벽한 모습이다. 이런 것은 앤틱이라 불러 마땅하다.

그 옆집 빈티지 가게에 들어간다.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를 헐렁함이 여유있고 정겹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가 깊은 것도 있고, 패이고 깨진 곳을 다른 것으로 붙이거나 아예 떨어져 나가 일부가 없는 것도 눈에 띈다.

이런 것들을 내 작업에 써볼 요량으로 빈티지 가게에만 가면 눈을 크게 뜨고 살핀다.

, 그 옆 예술가들의 공방은 어떤가. 본 기능을 상실하고 깨져나가 쓸모없게 된 고물들을 예술가의 아이디어로 닦아내고 갈아내고 붙여서 새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앤틱과 빈티지를 내 몸에 대입시켜 보았다.

그때가 50년을 조금 넘게 살아온 순간이었다.

나는 앤틱인가, 빈티지인가?

단순 비교가 가당치 않겠지만 나름 깊이 생각해본 순간이었다.

나 스스로는 앤틱이지 싶었다.

겉으로 특별히 표나게 망가진 곳이 없으니, 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부모님께서 세상에 내보내 주신 모습 그대로다. 세월의 때는 당연히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속 기능은 어떤가? 모르긴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2030년 후에라도 앤틱인 양 보일 수 있을까?

어찌 생각하세요, 그때에도 엔틱처럼 보일까요?”

꽤 많은 이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모임이 끝나자 여러 참석자들이 인사를 건넸다.

- 50이 넘었지만 앤틱인지 빈티지인지 따져보고 지금이라도 노력해야겠다.

- 아직 50이 안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제라도 많은 생각을 할 기회로 삼겠다.

- 교통사고로 다리를 많이 다쳤으니 앤틱이기는 포기해야 하지 않겠느냐 슬프다.

- 콜레스테롤이나 혈압을 자주 체크하고 식단도 바꿔 봐야겠다 등등

많은 얘기가 오갔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머리와 가슴의 얘기였었는데 끝내 말할 수 없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세대를 살아가며 내가 누구에게 이리저리 살아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가 물건을 볼 때에는 필요에 따라 겉모습과 기능을 보고 판단하지만, 진작 스스로를 돌아 볼 때에는 내면의 가치가 판단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가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동기부여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다들 그때의 결심대로 자신을 잘 관리해서 앤틱으로 평가 받을 수 있게 살아가고 있겠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의 나는 거의 고쳐질 가망이 없는 고물.

그러나 아직도 매일 명상하며 머리와 가슴은 앤틱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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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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