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2

 학도넷 소식지에 실린 글 입니다.      www.hakdo.net  2016 겨울호

 

지 지 않는 꽃

                                                                                                                                                            김 봉 화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작업실에 앉아 창밖을 본다. 여름 내내 무성한 잎을 달고 내 방을 내려다보던 키 큰 나무도 바람이 불때마다 잎을 떨구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벌써 한해가 또 지나가네. 새해에 할 일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앞서간 한해도 돌이켜 보다 뚝, 생각을 멈춘다.

그냥 그동안 해 오던 바느질이나 계속 해야지.

바늘에 실을 꿰려고 눈의 초점을 바늘귀에 맞추는 순간, 무엇인가 반짝 내 눈길을 먼저 가져갔다.

어제 밤 서울에서 돌아 와, 걸고 끼고 있던 것 다 벗어서 담아둔 작은 상자 속의 노오란 노오란, 노오란 것들이었다. 손에 들었던 것을 내려놓고 상자를 당겨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W군 어머니가 살며시 손에 쥐어준 압화 목걸이

K군 어머니가 수줍음 가득한 얼굴로 걸어 주던 자수 목걸이.

앙증맞은 노란색 꽃이 보석처럼 박힌 그녀들의 작품이다.

무엇이 이 여인들로 하여금 눈이 아프도록 이 작은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잊도록 하는가?

그리움, 그리움, 사무친 그리움 때문 일게다.

많은 손들이 모여 완성한 리본, 팔찌, 배지도 있고, J군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만든 핀도 있다. 다시 볼 수 없는 이 다정한 모습과 미소.

눈물이 난다. 남의 일만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내 가슴 깊이 묻어 두고 있는 그리움이 함께 뛰쳐 나와서이다.

 

나는 지난 3, 주말마다 12일로 안산을 다녀왔다.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억식 행사 준비 때문 이였다.

기획한 것과는 달리 시간은 많지 않고 따라서 홍보도 늦어져서 일손을 모으기는 쉽지 않은데, 이효립 선생 혼자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는 것을 보며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는 디자인을 공모, 심사해서 시민 웍샾으로 진행하려던 것이 차질을 빚은 것이다.

분향소에서 한 장,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 본 304명의 얼굴. 이 기막힌 상황.

-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 늙은이가 지금 무얼 할 수 있을까요? -

이 일에서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며칠 동안 생각하고 그려보고 샘플을 만들어 보다가 내린 결정은 - 지지 않는 꽃 이었다.

 

얇은 천을 둥글게 오리고 접어서 한 가닥의 실로 바느질해서 만들 수 있는 이 꽃은, 누구든 참여 할 수 있고 더구나 여러 지역에서 재료를 가져가 꽃을 만들어서 행사 사무실로 보내 주는 것이 가능 했다. 내 머리 속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시간이 부족하고 일손이 너무 귀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 와 준 나의 인연들과 유가족 협의회 사무실 한 켠에서 시작한 일은, 진행이 너무 더뎠다.

6~7송이의 꽃과 노란 조각배가 하나인 만장 304은 실제로 일이 많았다.

*만장(輓章) - 죽은 이에 대한 슬픔을 비단이나 종이에 써서 깃발처럼 만든 것.

 

걱정하고 있는 나와 K군 어머니(만장 준비실무팀장)를 바라보던 몇 분들이 함께 해 보자며 나섰다.

수학여행 보낸 아들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들이다. 믿기지 않는 이 현실을 마주하고서도 거의 매일같이 일인 시위를 하고, 모임에 나가 이야기하고, 일과가 끝나면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을까 이 사무실에 들르는 분들이다. 동거차도 언덕 천막에서 일주일동안 세월호 인양 작업을 지켜보다 교대하고 돌아온 부모님도 있었다.

우리가 이 일까지 해야 하나요, 이 아픈 가슴으로요? ”

어떡해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인데요. ”

미안 합니다. 고맙습니다. ”

부모님을 기리며 자녀들이 해야 할 이 작업을, 먼저 간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하고 있다니~!

거듭 미안 할 뿐이었다. 아버지들이 천에 본을 그리고 마름질 해 놓은 것을 어머니들이 바느질 했다.

우리 아이들이 예쁜 색깔의 시들지 않고 지지 않는 꽃이 되어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바느질에 담아 주시면 됩니다. 바느질은 마음입니다.”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 배인, 그렇지만 너무나 예쁜 꽃들이 하나 둘 모여서 바구니를 채웠다.

 

한 주가 지나자 사무실에는 많은 한복들이 도착했다. 장롱 속에 있던 다양한 색깔의 한복들이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나들이 한 것이었다.

슬픔과 분노로 어두움이 가득했던 사무실이 환해지고 꽃밭이 된 듯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던 분들이

뭐야 이게 뭐야? ”

여기 앉아서 꽃들 좀 만들어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던 색으로 꽃을 만들자구요. ”

지지 않는 꽃을 만들자고 선생님이 멀리서 오셔서 가르쳐 주고 계세요. ”

대책 없는 눈물이 또 난다.

이건 너무 좋은 한복인데 아깝다. 누가 보낸 거야? 내가 한번 입어 볼까? ㅎㅎ

우리 새끼들보다 더 아까운게 어디 있어? 여기 있는 무엇이든 다 잘라서 이쁜 꽃이나 얼른 만들어요. ”

한복을 걸쳐보는 모습을 보며 새 색시 같다며 모두 웃는다.

 

우리 애는 남자애가 빨강을 좋아 하더라고요. ”

우리 딸은 보라색을 무지 좋아 했는데

엄마는 예술적 안목이 없다고 핀잔주면서 내 옷을 골라주곤 했는데... ”

분홍, 분홍 천 이리 좀 줘요. ”

나는 내 아이 만장 하나 내가 만들란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엄마가 여기 못 오는 애들 있으니 그러면 안 되겠네. 함께 만들어 줘야지. ”

 

또 다시 눈앞이 흐릿해져, 허리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세 시간 삼십분 버스타고 와서 다시 불편한 의자에서 세 시간을 앉아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3월의 싸늘한 바람이 분향소 마당을 헤매고 있었다. 그 바람 따라 심호흡하며 걷다가 한쪽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여인들과 마주쳤다.

이 마당에 왠 빨래? 큰 버스까지?

~! 이를 어쩌나? 자원 봉사자들의 손에 들린 건 바다에서 건져 올린 희생자들의 소지품과 옷가지들이었다.

쫓기듯이 잰 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 왔다. 꽃은 여전히 아름답게 피고 있었다.

 

엄마를 따라 분향소에 들렸다 바느질 예쁘게 하느라 말이 없는 소녀들.

바느질은 자신 없다며 가위질 열심히 하는 청년들.

2년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미안하다며 돋보기 너머로 바늘 땀 챙기시는 여든 넘으신 할머니.

조용히 와서 주변 정리를 해 주고 돌아 나가는 젊은이.

소식 늦게 들었다며 멀리서 온 가족이 잔뜩 챙겨 온 주먹밥 식사. 먹기 좋게 담긴 과일까지.

 

슬픔속의 아름다움이었다.

 

테이블 뒤편에서는 K, J군 어머니가 완성 된 꽃을 크기별로 정리해서 수량을 세느라 바빴다. 부지런히 만들었지만 많이 부족한 듯 했다. 좀 더 많이 참여해 줘야 하는데...

 

다시 찾아 온 주말.

분향소에 들렸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바구니마다 색색의 예쁜 꽃들이 넘쳐 났다.

수녀원과 다문화 가정 모임에서도 가져 오고 서울, 인천, 파주 등 여기 저기에서 택배가 도착 했단다.

꽃이 많아요. 목표량을 넘긴 것 같습니다. ”

걱정하며 열심히 꽃을 세고 있던 K군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다.

어느 하나 정성스럽지 않은 것 없지만 색깔을 고려해서 달아야 하니 그 부분을 참고 하세요. ”

304개의 조각배와 2,000송이의 꽃. 지 지 않는 꽃. 다 되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했든가? 한결 가벼워졌다. 7kg 줄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은 오고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고, 잊지 않을 거라고 말 해 줘야지.

나는 다시 바늘에 실을 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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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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